
안덕 체류형 상권 실험, 제주 골목상권 로컬브랜딩의 힌트
서귀포시 안덕면 사계리와 화순리 일대 골목을 걸어보면 눈에 띄는 게 있다. 간판 없이 문패 하나만 걸어둔 카페, 예약제로만 운영되는 식당, 하루 손님을 스무 명 남짓으로 제한한 베이커리. 이런 가게들이 한 골목에 대여섯 개씩 붙어 있다. 화려한 프랜차이즈 간판 대신 낮고 조용한 상점들이 늘어선 풍경은 몇 년 전 이 동네와는 확실히 다르다.
안덕면은 산방산과 용머리해안, 사계해변을 낀 관광지이면서 동시에 상주 인구가 많지 않은 농어촌 지역이다. 통과형 관광객이 몰렸다가 빠지는 곳이었던 이 동네에, 최근 몇 년 사이 하루이틀 묵으며 동네를 천천히 도는 여행객이 늘었다는 게 현지 상인들 사이에서 체감되는 변화다. 이 흐름을 좇아 들어온 게 로컬 브랜드 매장들이고, 그 결과물이 지금 안덕 골목에서 벌어지는 일종의 ‘체류형 상권 실험’이다.
통과지에서 체류지로, 무엇이 달라졌나
안덕면은 오래전부터 관광버스가 잠깐 서는 곳이었다. 산방산을 보고, 용머리해안을 걷고, 사진 몇 장 남긴 뒤 다음 코스로 이동하는 식이었다. 숙박은 대개 제주시나 서귀포 중문 쪽에서 해결했고, 안덕면 안에서 밤을 보내는 여행객은 많지 않았다.
이 구조가 흔들리기 시작한 건 개별 여행객 비중이 커지면서다. 제주관광공사가 매년 발표하는 제주도 관광객 실태조사를 보면 단체 패키지보다 개별 자유여행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아진 지 이미 여러 해다(제주관광공사, https://www.ijto.or.kr). 자유여행객은 정해진 동선 대신 자기가 머무는 지역을 중심으로 반경을 넓혀가며 다니는 경향이 있고, 안덕면처럼 자연경관과 조용한 분위기를 동시에 가진 곳은 이 흐름에서 유리한 위치에 서게 됐다.
그 결과 사계리, 화순리, 대평리 일대에 게스트하우스와 독채 숙소가 하나둘 늘었고, 숙소 주변으로 아침을 먹을 카페, 저녁에 갈 만한 술집, 낮 시간을 보낼 서점이나 소품숍이 따라붙었다. 상권이 ‘관광객이 스쳐 지나가는 길목’에서 ‘하루를 보내는 생활 반경’으로 바뀐 셈이다. 이 변화는 하루아침에 일어난 게 아니라, 개별 숙박업자와 자영업자들이 각자 판단으로 들어와 조금씩 쌓인 결과에 가깝다.


골목에서 체감되는 변화, 상인과 주민의 입장
변화는 상인들에게 곧바로 매출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체류형 상권은 하루 방문객 수보다 재방문율과 체류 시간에 기대는 구조라서, 자리잡기까지 시간이 걸린다. 계절 편차도 여전히 크다. 성수기인 여름과 초가을에는 골목이 붐비지만 한겨울에는 문을 닫는 가게가 나올 정도로 비수기 타격이 크다는 게 안덕면 상권의 현실적인 조건이다. 제주는 섬이라는 특성상 항공권 가격과 좌석 상황에 따라 방문객 수 자체가 크게 흔들리는데, 이 부분은 본지가 다룬 제주 항공 좌석난 장기화 관련 기사(제주 항공 좌석난 장기화, 여행·숙박 예약 마케팅 대응법)에서도 짚은 바 있다.
원주민 입장에서는 상권 변화가 두 얼굴을 갖는다. 낡은 창고나 빈집이 카페와 공방으로 바뀌면서 동네에 활기가 도는 건 반가운 일이지만, 임대료가 오르면서 오래 살던 주민이 밀려나는 지점도 분명 존재한다. 이 문제는 안덕면만의 일이 아니라 제주 전역에서 반복되는 패턴이다. 이미 이호테우 해변 인근 골목형 상점가에서도 비슷한 긴장이 관찰된 적 있는데, 그 사례는 본지의 이전 기사(이호테우 골목형상점가 지정, 로컬 브랜드 상권 전략)에서 자세히 다뤘다.

왜 지금, 로컬 브랜드들이 안덕을 택했나
안덕면에 들어오는 가게들의 공통점은 대형 프랜차이즈가 아니라는 점이다. 서울이나 제주시 원도심에서 작은 매장을 운영하다가 안덕으로 옮겨온 경우, 혹은 처음부터 안덕을 첫 매장 자리로 고른 경우가 섞여 있다. 이들이 안덕을 선택하는 이유는 대체로 비슷하다. 임대료가 원도심보다 상대적으로 낮고, 산방산과 바다가 만드는 풍경 자체가 브랜드의 배경이 되어준다는 점이다.
여기에 더해 제주 부동산 시장의 흐름도 무관하지 않다. 최근 제주 전역에서 미분양 물량이 쌓이면서 상가와 단독 건물 임대 조건이 유연해졌다는 지적이 나오는데, 이 배경은 본지가 다룬 제주 미분양 관련 기사(제주 미분양 3천채 시대, 부동산·인테리어의 대응법)에서 살펴본 흐름과 이어진다. 낮은 진입 장벽 위에서 젊은 창업자들이 실험적인 매장을 여는 게 안덕 골목의 지금 풍경을 만든 배경 중 하나다.

다른 지역의 비슷한 실험들과 비교하면
체류형 상권으로의 전환은 제주만의 실험은 아니다. 강원 양양 죽도해변 일대가 서핑 문화를 중심으로 젊은 창업자들을 끌어들이며 비슷한 길을 걸었고, 전북 전주 한옥마을 인근도 관광 통과지에서 체류형 골목상권으로 바뀌는 과정을 거쳤다. 두 지역 모두 초기에는 임대료가 저렴한 지역에 개성 있는 소상공인이 모이며 활기를 띠었지만, 이후 임대료 상승과 상업화 속도를 감당하지 못하고 원래의 색깔을 잃어가는 국면을 겪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안덕면이 이런 전철을 밟을지, 아니면 조금 다른 궤적을 그릴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다만 안덕면은 다른 지역과 달리 산방산이나 용머리해안 같은 자연경관이 규제 대상이라 대규모 개발이 상대적으로 어렵다는 조건을 갖고 있다. 이 조건이 골목상권의 과속 상업화를 어느 정도 억제하는 안전판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오지만, 이는 아직 확정된 결과가 아니라 지켜봐야 할 지점이다.

앞으로 지켜볼 것들
안덕면 상권이 다음 단계로 넘어가려면 몇 가지 변수가 더 있다. 서귀포시나 제주도 차원에서 이 지역을 특정 상권 지구로 지정하고 지원책을 마련할지는 아직 공식적으로 확정된 바 없다. 소상공인 자금 지원이나 특별보증 같은 제도가 안덕 지역 상인들에게 어떻게 적용될지도 지켜볼 문제인데, 관련해서는 본지가 다룬 제주 소상공인 특별보증 기사(제주 소상공인 100억 특별보증, 신청 전 챙길 자금 전략)를 참고할 만하다.
비수기 대응도 관건이다. 여름과 가을에 몰리는 손님을 겨울까지 붙잡을 콘텐츠나 프로그램이 없다면 지금의 활기는 계절성 반짝 현상으로 끝날 수 있다. 제주 관광객 수 자체가 최근 들썩이는 상황에서 재방문객을 어떻게 만들어낼지는 안덕면만이 아니라 제주 전역 상권이 함께 안고 있는 숙제이기도 하다.

골목의 변화가 브랜드에 던지는 신호
안덕면 사례가 흥미로운 건 대형 자본이 아니라 개별 소상공인들의 판단이 쌓여 상권의 성격 자체를 바꿔놓았다는 점이다. 이는 지역에 들어가려는 브랜드에게 분명한 힌트를 준다. 화려한 간판이나 넓은 매장보다, 그 동네의 리듬과 풍경에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규모와 톤이 오히려 체류형 상권에서는 더 오래가는 선택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안덕처럼 아직 완성되지 않은 상권일수록 초기에 자리잡은 브랜드의 이미지가 그 골목 전체의 인상을 좌우하게 되고, 이는 광고주 입장에서 지금이 진입 타이밍을 저울질해볼 만한 시점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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