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돌담길과 오래된 마을 풍경
Jeju 2026.08.27

재일교포 4세 래퍼의 제주 뿌리찾기, 로컬 브랜드가 본 것

제주시 원도심의 한 오래된 카페, 낡은 나무 테이블 위에 흑백사진 한 장이 놓여 있다. 사진 속 인물은 촬영자의 증조할머니다. 카메라를 든 청년은 일본어 억양이 살짝 섞인 한국어로 카페 주인에게 사진 속 골목이 지금 어디쯤인지 묻는다. 몇 컷의 촬영이 오가고, 카페 주인은 옛 지도책을 꺼내 함께 들여다본다. 이 장면은 최근 온라인에서 조회수를 모으고 있는 한 유튜브 채널의 한 대목이다. 촬영자는 오사카에서 나고 자란 재일제주인 4세 래퍼로, 자신의 뿌리를 찾아 제주를 돌아다니는 다큐멘터리 형식의 콘텐츠를 연재하고 있다.

이 콘텐츠가 정확히 언제부터 시작됐는지, 몇 편이 공개됐는지에 대한 공식 통계는 아직 확인되지 않는다. 다만 지역 카페와 시장 상인들 사이에서 “그 영상 봤냐”는 이야기가 오가기 시작한 것은 이번 여름부터라는 점은 여러 현지 반응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영상 속에는 촬영자가 증조부모의 옛 주소지를 들고 원도심 골목을 헤매는 모습, 해녀 출신 할머니를 수소문해 만나는 모습, 오사카 코리아타운의 제주 출신 어른들에게 옛 이야기를 듣는 장면 등이 담겨 있다. 특정 상호나 장소가 배경으로 등장하면서, 해당 업체들이 자연스럽게 온라인에서 언급되는 부수적인 효과도 나타나고 있다.

왜 하필 지금, 이런 콘텐츠가 주목받는가

재일교포, 특히 재일제주인 커뮤니티의 역사는 짧지 않다. 1920~30년대 오사카와 제주를 오가던 정기 항로를 통해 많은 제주 사람들이 일본으로 건너갔고, 이후 몇 세대를 거치며 오사카 이쿠노구 일대에는 제주 출신 동포들이 밀집한 지역이 형성됐다. 그 후손들이 3세, 4세로 넘어가면서 한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하지 못하는 경우도 늘었고, 뿌리에 대한 감각도 세대를 거칠수록 희미해지는 흐름이 있었다.

그런데 최근 몇 년 사이 K-컬처의 세계적 확산과 맞물려, 해외 각지에 흩어진 한인 디아스포라 청년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콘텐츠로 풀어내는 흐름이 눈에 띄게 늘었다. 입양인의 친가족 찾기, 고려인 후손의 중앙아시아 답사기, 재미교포의 조부모 고향 방문기 같은 영상들이 유튜브와 SNS에서 꾸준히 소비되고 있다. 이번 재일제주인 래퍼의 콘텐츠도 이런 흐름 위에 있다고 볼 수 있다. 다만 제주라는 특정 지역, 그것도 섬이라는 폐쇄적이면서도 강한 정체성을 가진 공간을 배경으로 한다는 점에서 결이 조금 다르다.

원도심 상인들이 체감하는 변화

제주시 원도심은 최근 몇 년간 관광객의 발길이 눈에 띄게 줄었다는 이야기가 상인들 사이에서 반복적으로 나오던 곳이다. 신제주와 애월 등지로 상권이 옮겨가면서 옛 골목 상점가는 조용해졌고, 문을 닫는 가게도 적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이 영상에 잠깐이라도 노출된 카페나 식당은 손님들의 반응을 체감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지역 커뮤니티에 올라오고 있다.

물론 이것이 매출로 곧바로 이어졌는지, 방문객이 실제로 얼마나 늘었는지를 보여주는 공식 집계는 아직 없다. 하지만 “영상 보고 왔다”는 손님이 한두 명이라도 카페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면, 그것 자체가 원도심 상인들에게는 오랜만에 느껴보는 신호다. 관광지가 아닌 생활 골목, 관광버스가 서지 않는 좁은 길이 콘텐츠의 배경이 됐다는 점에서 기존의 관광 마케팅과는 접근 방식이 다르다.

제주 원도심 돌담 골목길

디아스포라 서사가 지역 콘텐츠로 이어진 다른 사례들

비슷한 흐름은 다른 지역에서도 관찰된 바 있다. 재미교포 3세가 전라도 고향 마을을 찾아가는 영상, 브라질 이민자 후손이 경상도 조부모의 흔적을 좇는 다큐멘터리 등은 지역 지자체가 뒤늦게 관광 콘텐츠로 활용하려 시도한 사례들이다. 다만 이런 시도들이 항상 성공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개인의 진솔한 서사에 지자체나 브랜드가 급하게 숟가락을 얹으려는 순간, 콘텐츠 특유의 진정성이 옅어지고 시청자들이 거리를 두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제주의 경우도 비슷한 갈림길에 서 있다. 이 래퍼의 콘텐츠가 개인의 순수한 뿌리 찾기 여정으로 계속 남을지, 아니면 관광 공사나 지역 브랜드의 협업 제안이 들어가면서 결이 바뀔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다만 확실한 것은, 이 영상이 지금까지 주목받은 이유가 ‘누가 시켜서 만든’ 콘텐츠가 아니라 촬영자 본인의 개인적 동기에서 출발했다는 점이라는 사실이다.

재일교포 커뮤니티가 있는 오사카 코리아타운 거리

제주라는 섬이 가진 이야기의 밀도

제주는 관광 의존도가 높은 지역이면서 동시에 해녀, 4·3, 이주와 이산의 역사 등 다른 지역보다 밀도 높은 서사를 품고 있는 곳이다. 해녀 문화는 이미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며 국제적으로도 알려진 소재이고, 오사카를 비롯한 일본 각지로 건너간 제주 사람들의 이야기 역시 지역사 연구자들 사이에서는 꾸준히 다뤄져 온 주제다. 다만 이런 이야기들이 관광객을 향한 콘텐츠로 매끄럽게 번역된 경우는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그런 점에서 이번 래퍼의 콘텐츠가 흥미로운 이유는, 무거울 수 있는 이산의 역사를 개인의 가벼운 호기심과 시행착오로 풀어냈다는 데 있다. 완벽한 한국어를 구사하지 못해 더듬거리는 장면, 증조모의 옛 주소를 찾아 헤매다 엉뚱한 골목에 들어서는 장면 같은 것들이 오히려 시청자들에게 공감을 산다. 섬이라는 조건, 계절에 따라 관광객 수가 크게 출렁이는 제주의 특수한 사정을 생각하면, 이런 비수기형 콘텐츠가 여름 성수기 이후 조용해지는 시기에 잔잔하게 화제를 이어가는 것도 눈여겨볼 지점이다.

제주 해녀가 물질하는 모습

아직 정해지지 않은 것들

이 콘텐츠가 앞으로 몇 편이나 더 이어질지, 촬영자가 제주를 다시 방문할 계획이 있는지는 공식적으로 확인되지 않았다. 지역 관광 관련 기관이 이 콘텐츠에 공식적으로 반응하거나 협업을 제안했는지에 대해서도 아직 알려진 바가 없다. 다시 말해 지금 이 시점에서는 이것이 하나의 개인 프로젝트로 끝날지, 시리즈로 이어지며 지역과 결합할지가 정해지지 않은 상태다.

다만 이런 종류의 콘텐츠가 지속되려면 촬영자 개인의 의지뿐 아니라, 그를 맞이하는 지역 사람들의 태도도 중요하게 작용한다는 점은 다른 지역의 유사 사례에서 반복적으로 확인된 부분이다. 카페 주인이 옛 지도를 꺼내 함께 골목을 찾아준 것처럼, 큰 기획 없이도 자연스럽게 이야기에 동참해주는 작은 순간들이 쌓여야 콘텐츠가 다음 편으로 이어질 동력을 얻는다.

제주 원도심의 작은 로컬 카페 내부

로컬 브랜드가 눈여겨볼 지점

이 사례를 지켜보는 제주의 로컬 브랜드나 상점 입장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명확하다. 거창한 캠페인이나 협찬 없이도, 진짜 이야기가 있는 공간은 콘텐츠 속에서 자연스럽게 조명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이것은 운에 기대는 이야기가 아니다. 평소에 자신의 가게나 브랜드가 어떤 사연을 품고 있는지, 그 사연을 손님이나 방문객에게 자연스럽게 전달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가 먼저다. 낡은 사진 한 장, 오래된 장부, 단골손님의 사연 같은 것들을 평소에 정리하고 기록해두는 브랜드라면, 언젠가 이런 우연한 조명이 찾아왔을 때 훨씬 풍부하게 이야기를 이어갈 수 있다. 뿌리 찾기 콘텐츠가 보여준 것은 결국 화려한 제작비가 아니라 진짜 이야기의 힘이었고, 이는 원도심 골목이든 신생 브랜드든 마케팅의 출발점을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사례다.

제주 전통시장 골목 풍경
음악 작업을 하는 청년 뮤지션의 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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