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주 장애인 로컬 크리에이터 모집, 포용적 콘텐츠의 등장
오후 두 시, 제주시 원도심의 한 카페 앞에 삼각대가 세워진다. 카메라 앞에 선 사람은 전동 휠체어에 앉아 있고, 옆에서는 수어로 대화를 나누는 촬영 스태프가 카페 사장에게 인터뷰 순서를 설명한다. 흔한 브이로그 촬영 같지만, 이 장면을 만든 주체는 광고 대행사가 아니라 장애인 당사자를 로컬 크리에이터로 세우려는 최근의 모집 움직임이다. 제주라는 섬에서,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의 얼굴이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지금까지 제주 콘텐츠의 화면 밖에 있던 사람들
그동안 제주를 소개하는 영상이나 사진 콘텐츠는 대체로 비장애인 여행 유튜버나 인플루언서의 시선으로 만들어졌다. 협재 해수욕장의 노을, 흑돼지 맛집의 웨이팅 줄, 오름 정상에서 내려다본 풍경 같은 장면은 익숙하지만, 그 장면을 만드는 카메라 뒤에 장애인이 서 있는 경우는 드물었다. 여행지의 접근성 정보—휠체어로 갈 수 있는 식당, 점자 안내가 있는 관광지, 수어 해설이 가능한 전시—는 있었어도, 그 정보를 당사자가 직접 검증하고 전달하는 콘텐츠는 상대적으로 적었다.
이건 제주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관광 콘텐츠 시장 전체가 비슷한 구조였다. 다만 제주는 섬이라는 조건 때문에 접근성 이슈가 더 도드라진다. 렌터카 없이는 이동이 어려운 지역이 많고, 대중교통 배차 간격이 육지 도시보다 길다. 휠체어 이용자나 이동에 제약이 있는 여행객에게는 “갈 수 있는가”와 “가고 싶은가”가 자주 충돌하는 지역이다.

무엇이 달라지는가, 모집의 실체
제주도와 지역 콘텐츠 기관을 중심으로 장애인 당사자를 로컬 크리에이터로 육성·모집하는 프로그램이 추진되고 있다. 참여자는 제주 동네 상권, 관광지, 일상 공간을 직접 촬영하고 기록하며, 그 결과물이 지역 홍보 콘텐츠나 접근성 정보로 활용되는 구조다. 다만 세부 모집 규모, 지원금 액수, 정확한 운영 일정 같은 부분은 이 시점(2026년 9월) 기준으로 아직 최종 확정되지 않았거나 기관별로 공고 시기가 다르게 진행되고 있어, 관심 있는 사람은 제주특별자치도나 관련 사업 공고를 통해 최신 정보를 직접 확인하는 편이 정확하다.
핵심은 숫자보다 방향이다. 콘텐츠를 만드는 주체 자체가 확장된다는 점, 그리고 그 콘텐츠가 “장애인도 볼 수 있는 제주”가 아니라 “장애인이 직접 보여주는 제주”로 바뀐다는 점이다. 이 차이는 작지 않다. 접근성 정보를 비장애인 담당자가 조사해서 전달하는 것과, 실제로 그 경사로를 오르고 그 화장실 문턱을 마주한 사람이 카메라를 들고 말하는 것은 신뢰도의 층위가 다르다.

동네 상점과 방문객이 마주치는 변화
이 변화가 가장 먼저 몸에 닿는 사람들은 상권의 상인들이다. 크리에이터가 촬영을 요청하며 매장 문 앞 경사로 여부, 좌석 간격, 화장실 접근성을 물어보는 순간, 그 상점은 처음으로 자기 공간을 접근성의 언어로 다시 보게 된다. 원도심 골목이나 오래된 재래시장처럼 시설 개보수가 쉽지 않은 곳에서는 이 질문이 부담스러울 수도 있지만, 동시에 그동안 놓치고 있던 손님층을 발견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방문객 쪽에서 보면 체감은 더 직접적이다. 장애인 여행객이나 그 가족들에게 제주는 오래전부터 “가고 싶지만 검증되지 않은 곳”이었다. 이동 수단, 숙소 구조, 식당 좌석 배치 하나하나를 사전에 전화로 확인해야 했던 여행이, 당사자가 직접 만든 콘텐츠 하나로 훨씬 수월해질 여지가 생긴다. 계절 편차가 큰 제주 관광업 입장에서는 비수기 방문 동기를 만드는 새로운 통로가 될 수도 있다는 점도 눈여겨볼 부분이다.

다른 지역에서는 이 흐름이 어떻게 흘러갔나
장애인 당사자 크리에이터를 앞세운 콘텐츠 시도는 제주가 처음은 아니다. 서울이나 부산 등 대도시에서는 장애인 접근성 리뷰 채널이나 배리어프리 여행 콘텐츠가 먼저 등장했고, 일부는 지자체나 관광공사 사업과 연결되며 규모를 키워왔다. 이런 시도들이 공통적으로 부딪힌 지점은 초기 관심이 반짝 화제가 된 뒤, 지속적인 콘텐츠 생산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사그라드는 경우였다. 모집은 되지만 후속 지원—장비, 촬영 보조 인력, 유통 채널—이 끊기면 활동이 멈추는 패턴이 반복됐다.
제주가 이 흐름에서 다르게 갈 수 있는 지점은 섬이라는 물리적 한계가 오히려 콘텐츠의 밀도를 만들 수 있다는 점이다. 이동 범위가 한정된 만큼 한 크리에이터가 자기 동네, 자기 상권을 반복적으로 깊게 다룰 여지가 크다. 대도시형 콘텐츠가 넓게 퍼지는 방식이었다면, 제주형 콘텐츠는 특정 골목, 특정 상점가를 촘촘하게 기록하는 방식으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있다.

아직 정해지지 않은 것들
이 프로그램이 일회성 홍보 이벤트로 끝날지, 지속 가능한 지역 콘텐츠 생태계로 자리잡을지는 아직 지켜봐야 하는 영역이다. 참여자에게 어떤 형태의 보상이나 활동비가 지급되는지, 촬영 장비나 이동 보조 인력이 얼마나 안정적으로 지원되는지 같은 실무적인 부분이 확정되지 않으면 좋은 취지가 단발성 캠페인으로 그칠 위험이 있다. 또한 콘텐츠가 유통될 채널—제주도 공식 관광 플랫폼인지, 개별 크리에이터의 SNS인지, 아니면 지역 언론과의 협업인지—도 아직 명확히 그려지지 않은 상태다.
장애 유형에 따라 필요한 지원이 크게 다르다는 점도 변수다. 시각장애, 청각장애, 지체장애 당사자가 콘텐츠를 만드는 방식과 필요한 보조 인력은 전혀 다르다. 하나의 프로그램으로 이 모든 다양성을 균등하게 담아내기는 쉽지 않고, 실제 운영 과정에서 시행착오가 따를 가능성이 높다.

마무리
지역 브랜드나 광고주 입장에서 이 흐름은 단순한 사회적 배려의 문제가 아니라 콘텐츠 신뢰도와 새로운 고객층을 동시에 얻을 수 있는 기회로 읽힌다. 장애인 크리에이터가 직접 검증한 매장 정보는 그 자체로 접근성 마케팅의 근거가 되고, 이런 콘텐츠와 협업하는 상점이나 브랜드는 “누구나 편하게 올 수 있는 곳”이라는 메시지를 광고 문구가 아니라 실제 이용 후기로 확보하게 된다. 제주처럼 관광 의존도가 높고 재방문율이 중요한 지역일수록, 지금까지 콘텐츠 시장에서 잘 다뤄지지 않았던 이 고객층에게 먼저 신뢰를 쌓은 브랜드가 다음 계절에 웃을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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