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수동 팝업스토어 매장 입구에 진열된 지역 브랜드 제품들
Jeju 2026.09.14

제주 로컬브랜드 14곳 성수동 팝업, 무엇을 확인하려는가

성수동 골목 한켠, 오래된 공장 건물을 개조한 공간에 제주 감귤향이 퍼진다. 진열대에는 귤피를 말려 만든 티백과 현무암 질감을 본뜬 도자기 컵, 해녀가 직접 채취했다는 문구가 적힌 해조류 스낵이 나란히 놓여 있다. 계산대 옆에는 QR코드가 붙어 있고, 그 옆에는 작은 설문지가 놓여 있다. 이곳에서 물건을 파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건 이 설문지를 채우는 일이다.

제주 로컬브랜드 14곳이 함께 참여한 이번 팝업은 2026년 9월 서울 성수동에서 진행 중이다. 참여 브랜드는 식품, 생활잡화, 뷰티, 액세서리 등 업종이 제각각이지만 공통점이 하나 있다. 모두 제주에서 나고 자란 브랜드이면서, 육지 판로를 아직 본격적으로 뚫지 못했다는 점이다. 정확한 종료일과 향후 정례화 여부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고, 주최 측도 이번 회차의 반응을 보고 다음 계획을 정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서울 진출은 다른 방식이었다

제주 로컬브랜드가 육지에 알려지는 경로는 오랫동안 두 가지뿐이었다. 하나는 관광객이 제주에서 사서 서울로 들고 가는 것, 다른 하나는 대형 유통사 입점이었다. 전자는 브랜드가 통제할 수 없는 우연에 가까웠고, 후자는 입점 수수료와 최소 발주 물량 같은 진입장벽이 스몰브랜드에게 버거웠다. 매대 하나 얻으려면 이미 어느 정도 매출 규모가 있어야 했고, 그 규모를 만들려면 서울 노출이 필요한 악순환이었다.

거부기밥이 부산에서 팝업을 열었던 사례처럼, 최근 제주 F&B 브랜드들이 육지 도시에서 단발성 팝업을 시도한 전례는 있었다. 하지만 이번처럼 여러 업종의 브랜드 14곳이 한 공간에 모여 공동으로 서울 시장에 진입한 경우는 드물다. 개별 브랜드가 혼자 임대료와 물류비를 감당하기보다, 여럿이 모여 리스크를 나누는 방식을 택한 셈이다.

성수동 골목의 창고형 카페 외관

이번엔 무엇이, 어떻게 달라지는가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이 팝업이 판매 실적보다 데이터 수집에 무게를 두고 있다는 점이다. 참여 브랜드 관계자들의 설명을 종합하면, 이번 팝업의 핵심 목적은 육지 소비자가 제주 로컬브랜드의 어떤 카테고리에 반응하는지, 가격대는 어느 선까지 받아들이는지, 재구매 의사가 있는지를 확인하는 데 있다. 계산대 옆 설문과 SNS 태그 이벤트, 현장 인터뷰가 병행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두 번째 변화는 입지다. 성수동은 젊은 소비자와 편집숍, 브랜드 팝업이 몰리는 지역으로, 제주 브랜드 입장에서는 관광객이 아닌 서울 거주 소비자를 직접 만나는 첫 접점이다. 제주에서 파는 것과 성수동에서 파는 것은 전혀 다른 상황이다. 제주에서는 ‘여행 기념품’이라는 맥락이 구매를 도왔지만, 성수동에서는 그 맥락 없이 제품력만으로 승부해야 한다.

세 번째는 공동 운영 방식이다. 개별 브랜드가 각자 매장을 차리는 대신 한 공간을 나눠 쓰면서 임대료와 인력, 마케팅 비용을 분담했다. 이 방식이 성과를 내면 다음번엔 참여 브랜드 수를 늘리거나 상설 매장 형태로 발전시키는 안도 검토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지만, 아직은 확정된 계획이 아니다.

제주 오일장 좌판에 놓인 로컬 제품들

왜 지금, 이런 방식으로 시도하는가

제주는 관광 의존도가 높은 지역 경제 구조를 가지고 있다. 로컬브랜드 상당수가 매출의 큰 부분을 관광 성수기에 의존하고, 겨울철 비수기에는 매출 편차를 크게 겪는다. 최근 몇 년간 제주 관광객 수 자체가 예전만큼 안정적이지 않다는 지적이 이어지면서, 제주 안에서만 매출을 만드는 구조로는 지속가능성이 떨어진다는 위기감이 브랜드들 사이에 퍼졌다.

여기에 섬이라는 물리적 조건도 걸림돌이었다. 물류비와 배송 시간, 재고 관리 부담이 육지 브랜드보다 구조적으로 높다. 항공 좌석난이나 화물 운송 지연 같은 변수도 매출에 직접 영향을 준다. 이런 조건에서 개별 브랜드가 혼자 서울 상설 매장을 여는 건 재고 리스크가 너무 크다. 여러 브랜드가 모여 팝업이라는 짧은 기간, 낮은 리스크로 시장 반응을 먼저 확인하려는 시도는 그래서 합리적인 선택에 가깝다.

안덕에서 진행된 체류형 상권 실험이나 이호테우 골목형상점가 지정처럼, 최근 제주 안에서도 로컬브랜드를 한데 모아 상권을 실험하는 흐름이 있었다. 이번 성수동 팝업은 그 실험의 무대를 제주 밖으로 옮긴 버전이라고 볼 수 있다. 제주 안에서 통했던 방식이 제주 밖에서도 통하는지를 확인하는 두 번째 단계인 셈이다.

매대에 진열된 브랜드 패키지 제품

현장에서 실제로 겪는 일들

팝업에 참여한 브랜드 입장에서는 낯선 소비자를 상대하는 일 자체가 새로운 경험이다. 제주에서는 특별할 것 없던 질문, 예컨대 원재료가 어디서 오는지, 왜 이 가격인지 같은 질문을 성수동 방문객들은 훨씬 꼼꼼하게 묻는다. 브랜드 스토리를 설명하는 방식도 다시 다듬어야 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물류를 책임지는 실무자들은 또 다른 고민을 안고 있다. 제주에서 서울로 물건을 옮기는 일정과 팝업 재고 소진 속도를 맞추는 게 생각보다 까다롭다. 인기 있는 품목은 금세 동나고, 추가 배송을 받으려면 최소 하루 이상의 물류 시간이 든다. 성수기 항공 화물 지연까지 겹치면 매대가 며칠씩 비는 일도 생긴다.

방문객 입장에서는 이 팝업이 제주 여행 없이도 제주를 소비할 수 있는 새로운 경로다. 예전 같으면 제주에 가야만 살 수 있던 물건을 서울에서, 그것도 여러 브랜드를 한 번에 비교하며 살 수 있다는 점이 방문 동기가 된다. SNS에서 이 팝업이 공유되는 방식을 보면, 제품 자체보다 ‘제주 브랜드 여럿을 한 공간에서 만났다’는 경험 자체가 콘텐츠가 되는 경우도 많다.

팝업스토어 안을 둘러보는 방문객들

다른 지역, 다른 시기의 비슷한 시도들

지역 브랜드가 수도권에 팝업 형태로 진출하는 방식은 제주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전남, 강원 등 다른 지방자치단체와 지역 상공회의소도 서울 유동인구가 많은 지역에 지역 브랜드 공동관을 여는 시도를 종종 해왔다. 다만 이런 시도가 상설 매장이나 정례 행사로 이어진 경우와 한 번의 이벤트로 끝난 경우가 갈렸던 이유는 대개 데이터를 얼마나 축적했는가에 달려 있었다.

단발성 팝업으로 그친 사례들은 화제성은 얻었지만 그 이후 무엇을 할지에 대한 다음 단계가 준비되지 않았던 경우가 많다. 반대로 팝업을 반복하며 소비자 데이터를 쌓고, 어떤 품목이 육지에서 통하는지를 검증한 뒤 온라인몰이나 편집숍 입점으로 이어간 사례는 상대적으로 오래 살아남았다. 이번 성수동 팝업이 참여 브랜드들에게 설문과 데이터 수집을 강조하는 것도 이런 선례를 의식한 결과로 보인다.

화물이 실리는 항구 선착장

아직 정해지지 않은 것들

이번 팝업이 끝난 뒤 어떤 브랜드가 서울에서 후속 매장이나 입점을 이어갈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참여 브랜드 대부분은 이번 반응을 보고 개별적으로 다음 단계를 결정하겠다는 입장이다. 팝업 자체의 정례화 여부, 참여 브랜드 수를 늘릴지, 공간을 상설화할지도 확정된 바 없다.

물류와 재고 관리를 어떻게 안정화할지도 남은 과제다. 섬이라는 조건에서 육지 상설 매장을 유지하려면 배송 주기와 물류비 부담을 지금보다 정교하게 설계해야 한다. 이 부분이 해결되지 않으면 아무리 팝업 반응이 좋아도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어렵다는 게 관련 업계의 시각이다.

배송 상자를 포장하는 소상공인의 손

마무리

이번 성수동 팝업의 본질은 판매가 아니라 검증이다. 제주 로컬브랜드 14곳은 이 짧은 기간 동안 육지 소비자의 진짜 반응을 확인하고, 그 데이터를 다음 결정의 근거로 삼으려 한다. 이 흐름은 제주 안에서만 브랜드를 키워온 다른 사업자들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관광객 방문에 기대는 매출 구조에서 벗어나 육지 소비자를 직접 겨냥하려면, 큰 투자보다 이런 저리스크 테스트 무대를 먼저 만드는 편이 안전하다는 것이다. 브랜드나 광고주 입장에서는 이런 팝업이 단순한 홍보 이벤트가 아니라, 제품력과 메시지가 낯선 시장에서 실제로 통하는지를 저비용으로 검증하는 실험실로 활용될 수 있다는 점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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