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올레 길을 따라 걷는 여행자와 돌담 너머 마을 풍경
Jeju 2026.10.14

제주올레 할망스테이 시즌2, 시니어 호스트가 연 숙소 4곳

제주올레가 시니어 여성을 숙소 운영자로 세우는 ‘할망스테이’ 사업의 두 번째 단계를 시작했다. 이번 시즌2로 애월리, 귀덕리, 행원리, 남읍리 네 마을에 숙소 4곳이 문을 열었다. 이번 시즌2의 핵심은 단순하다. 오래 그 마을에 살아온 할머니들이 자기 집 한 채를 여행자에게 내어주고, 하룻밤 묵는 이들에게 마을의 시간을 나눠준다는 것이다.

제주 돌담과 낮은 지붕이 이어진 마을 골목

이전에는 걷다가 잠만 자고 떠나는 길이었다

올레길이 처음 열린 지 이제 20년 가까이 되어 간다. 길이 유명해지면서 코스마다 게스트하우스와 펜션이 들어섰지만, 그 상당수는 육지에서 내려온 사업자가 운영하는 숙박업이었다. 걷는 사람은 마을을 스쳐 지나가고, 숙소는 잠자리 그 이상의 의미를 갖기 어려운 구조였다. 마을과 여행자 사이에 접점이 생기기 어려웠던 것이다.

제주올레는 이런 구조에 문제의식을 가지고, 2009년 ‘할망숙소’라는 이름으로 마을에 오래 거주한 여성 어르신을 숙소 운영자로 연결하는 일을 시작했다. 이번 시즌2는 2026년 3월 에어비앤비 커뮤니티 펀드로 지원받은 15만 달러(약 2억1,750만원)를 바탕으로 추진됐다. 새로 문을 연 곳은 애월리 ‘애월당귤-불턱올레’, 귀덕리 ‘귀덕온담’, 행원리 ‘순자할망민박’, 남읍리 ‘두모악’ 등 4곳이다.

무엇이 달라지는가, 할머니가 주인이 되는 숙소

제주 전통 가옥을 개조한 숙소 마당

할망스테이의 방식은 명확하다. 마을에 사는 시니어 여성이 자신의 집을 손질해 여행자를 받는다. 이번 시즌2의 호스트 중에는 해녀 출신 어르신도 있다. 집마다 분위기와 여행자를 맞는 방식은 어디까지나 그 집 할머니의 손에 달려 있다. 예약은 에어비앤비를 통해 받는다.

이 방식이 이전 숙박업과 다른 점은 숙소가 마을의 생활과 분리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여행자는 하룻밤 묵으며 그 집 할머니가 살아온 마을의 시간을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다. 표준화된 서비스가 아니라 집마다 다른 분위기가 생기는 셈인데, 이는 정형화된 호텔이나 대형 숙박시설이 흉내 내기 어려운 지점이기도 하다.

왜 지금 시니어 여성이 호스트가 되는가

텃밭을 돌보는 제주 시니어 여성의 뒷모습

제주는 섬이라는 조건 때문에 관광이 지역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고, 그만큼 관광 수익이 마을 안까지 고르게 퍼지느냐가 오랜 숙제였다. 올레길이 지나는 마을 상당수는 젊은 세대가 빠져나가고 고령 인구 비중이 높은 곳이 많다. 이런 마을에서 시니어, 특히 여성이 별다른 소득 활동 없이 지내는 경우가 적지 않았던 배경에서 할망스테이는 나온 아이디어다.

집을 숙소로 내어주는 일은 크게 무리한 노동을 요구하지 않으면서도, 오래 살아온 동네에 대한 애착과 살림 솜씨를 그대로 자산으로 바꿔주는 방식이다. 여행자 입장에서도 정형화된 게스트하우스보다 더 깊이 있는 제주를 만날 기회가 된다. 다만 이 모델이 지속되려면 숙소를 맡은 시니어가 예약, 정산, 기본적인 위생 관리까지 감당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이 부분에서 제주올레와 지자체의 교육·지원 프로그램이 얼마나 촘촘하게 뒷받침되는지가 관건으로 남는다.

계절과 섬이라는 조건이 만드는 변수

올레길 리본과 이정표가 세워진 갈림길

제주 관광은 계절 편차가 뚜렷하다. 올레길을 걷기 좋은 봄가을에 예약이 몰리고, 한여름 폭염이나 겨울 강풍이 잦은 시기에는 발길이 눈에 띄게 줄어든다. 할망스테이처럼 개인이 운영하는 소규모 숙소는 이 편차를 대형 숙박업체보다 훨씬 직접적으로 체감할 수밖에 없다. 성수기에 반짝 수익이 생겨도 비수기에 그 흐름이 이어지지 않으면 지속 가능성 자체가 흔들린다.

또한 섬이라는 특성상 시설 보수나 응급 상황 대응이 육지보다 더디게 이뤄질 수 있다는 점도 변수다. 이런 이유로 할망스테이 참여 마을을 어디까지 넓힐지, 비수기 운영을 어떻게 지원할지는 이번 시즌2가 진행되며 계속 조정될 여지가 있는 부분이다.

다른 지역의 비슷한 시도들이 남긴 교훈

시니어나 지역 주민을 숙박 운영 주체로 세우는 시도는 제주만의 일은 아니다. 강원도나 전라도의 농어촌 민박 사업에서도 비슷한 접근이 있었고, 초기에는 화제를 모았다가 예약 시스템이나 후속 관리가 뒷받침되지 못해 흐지부지된 사례들이 있었다. 반대로 오래 이어지며 마을의 대표 콘텐츠로 자리 잡은 곳들도 있는데, 공통점은 초기 지원에서 멈추지 않고 운영자 교육과 온라인 예약 연결을 꾸준히 손봐준 경우였다.

소박한 아침상이 차려진 제주 가정집 식탁

할망스테이 역시 이 갈림길 위에 있다. 2009년 할망숙소에서 출발해 시즌2까지 이어졌다는 것 자체는 긍정적 신호지만, 몇 년 뒤에도 숙소가 유지되고 있을지는 결국 예약이 꾸준히 들어오느냐, 운영을 맡은 어르신들의 건강과 의지가 이어지느냐에 달려 있다. 이는 지금 시점에서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부분이다.

아직 정해지지 않은 것들

아침 안개가 걷히는 제주 해안 마을

시즌2가 시작됐다고 해서 모든 것이 정해진 것은 아니다. 참여 마을을 앞으로 더 늘릴지, 비수기 운영을 어떻게 이어갈지는 지켜봐야 할 대목이다. 예약은 에어비앤비에서 할 수 있으니, 여행을 계획 중이라면 원하는 숙소와 날짜의 예약 가능 여부를 미리 확인해두는 편이 좋다.

이 변화를 지켜보는 이들에게는 결국 숙소 하나하나가 얼마나 오래, 얼마나 잘 운영되느냐가 이 실험의 성패를 가늠하는 잣대가 될 것이다. 화려한 개장 소식보다 중요한 것은 몇 해 뒤에도 그 집들이 여전히 여행자를 맞고 있는지일지 모른다.

할망스테이처럼 지역 주민이 직접 만든 콘텐츠는 브랜드 입장에서도 눈여겨볼 지점이 있다. 정형화된 관광 상품이 주기 어려운 진짜 이야기와 얼굴이 있는 로컬 스토리는, 협업이나 콘텐츠 제휴를 고민하는 브랜드에게 새로운 접점이 될 수 있다. 다만 이런 협업은 마을과 운영자의 속도를 존중하는 방식으로 접근해야 오래갈 수 있다는 점을 함께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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