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 외벽에 설치된 히트펌프 실외기
Jeju 2026.09.03

제주 히트펌프 보급사업 상생 논란, 지역기업 ESG 대응법

제주시 한 주택가, 지붕 위에 태양광 패널이 얹힌 집들 사이로 실외기처럼 생긴 낯선 설비가 하나둘 늘고 있다. 히트펌프다. 화석연료 대신 대기열과 전기를 이용해 냉난방을 해결하는 이 장비가 최근 제주 지역 사회의 뜨거운 화두로 떠올랐다. 정작 논란의 중심은 기술이 아니라 ‘누가 이 사업을 하느냐’는 문제였다.

제주도가 추진해온 히트펌프 보급사업을 두고 지역 설비업체들이 반발하는 목소리를 내면서 상황이 커졌다. 보급사업 참여 자격과 시공 물량 배분 과정에서 역외 대기업 계열 시공사나 외지 업체가 상당한 비중을 가져가는 구조라는 지적이 나왔고, 지역 중소 설비업체들은 이런 방식이라면 지역경제에 실질적으로 돌아오는 몫이 크지 않다고 주장했다. 이 문제는 제주도의회에서도 다뤄지며 공론화됐다.

보급사업, 왜 지금 논란이 됐나

제주도는 탄소중립 정책의 일환으로 신재생에너지 전환에 힘을 실어왔다. 태양광 발전 설비를 이미 대규모로 보급한 데 이어, 냉난방 분야에서도 화석연료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히트펌프 보급을 확대하는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가정과 소규모 사업장의 보일러나 에어컨을 히트펌프로 교체하도록 지원금을 지급하는 방식이 대표적이다.

문제는 이 사업의 설계 방식이다. 보급사업 대부분이 도 단위 예산이나 국비 매칭 사업으로 진행되는데, 시공사 선정 과정에서 규모나 실적 기준이 높게 설정되면 상대적으로 영세한 지역 업체는 참여 문턱을 넘기 어렵다는 게 반발의 핵심이다. 특히 제주는 육지와 분리된 섬이라는 조건 때문에 자재 운송비와 인건비가 육지보다 높게 형성되는데, 정작 사업 물량은 도외 업체가 상당 부분 가져가면서 지역 경제 순환에는 기여하지 못한다는 불만이 커졌다.

이런 문제 제기가 처음은 아니다. 태양광 보급사업이 확대되던 시기에도 비슷한 갈등이 있었다. 대규모 발전사업자나 외지 시공사가 사업을 주도하면서 정작 부지를 제공한 지역 주민이나 소규모 시공업체는 사업 참여 기회를 얻지 못한 채 발전 부지 주변에 대한 부담만 떠안았다는 지적이 반복돼 왔다. 히트펌프 보급사업 논란은 이런 흐름의 연장선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주택가에 설치된 히트펌프 실외기 모습
지붕 위에 설치된 태양광 패널

현장에서 벌어지는 일들

지역 설비업체 입장에서는 단순히 ‘물량을 더 달라’는 요구가 아니다. 히트펌프는 설치 이후 정기적인 점검과 유지보수가 필요한 장비인데, 시공을 맡은 업체가 도외에 있으면 사후관리 요청 시 대응 속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실무적인 우려도 있다. 특히 여름철 냉방 성수기나 겨울철 난방 성수기처럼 장비 가동이 몰리는 시기에 문제가 생기면, 육지에서 인력이 내려오기까지 시간이 걸리는 구조다.

보급사업 대상이 되는 주민들도 이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다. 지원금을 받아 설비를 교체한 가정 입장에서는 시공 품질이나 사후관리가 만족스러운지가 더 중요한데, 시공사가 지역 기반이 아닐 경우 하자 발생 시 처리 과정이 매끄럽지 않았다는 불만이 제기된 사례들이 도의회 질의 과정에서 언급되기도 했다. 반대로 지역 업체를 우선 배정하는 방식으로 제도를 바꾸면 시공 역량이나 물량 소화 능력이 충분한지에 대한 의문도 함께 나온다. 어느 쪽이든 쉽게 결론 나기 어려운 지점이다.

지방자치단체 청사 외관

최근 달라지고 있는 것들

이런 지적이 이어지자 제주도 차원에서 향후 보급사업 설계 시 지역 업체 참여 비중을 높이는 방향의 개선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다만 구체적인 참여 비율이나 시행 시기 등 세부 기준은 아직 확정되지 않은 상태다. 관련 조례 개정이나 사업 공고 지침 변경이 논의 테이블에 오른 단계로, 실제 적용은 향후 사업 공고를 통해 확인해야 하는 부분이다.

동시에 지역 설비업체들도 자체적으로 협의체를 구성해 목소리를 모으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개별 업체 단위로는 대응력이 떨어진다는 판단에서, 공동으로 입찰에 참여하거나 컨소시엄 형태로 사업 역량을 갖추려는 시도다. 이는 제주뿐 아니라 다른 지방자치단체의 신재생에너지 보급사업에서도 종종 나타나는 대응 방식이다. 지역 업체 단독으로는 대형 사업 요건을 충족하기 어려우니, 여러 업체가 뭉쳐 규모의 문턱을 넘으려는 전략인 셈이다.

제주 해안가와 주택가 풍경

섬이라는 조건이 만드는 특수성

제주에서 이런 상생 논란이 유독 자주 불거지는 데는 섬이라는 지리적 조건이 크게 작용한다. 육지와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다 보니 자재나 부품 조달, 인력 이동에 드는 비용이 구조적으로 높다. 도외 대형 업체가 사업을 수주해도 실제 시공 인력은 결국 현지에서 조달하거나 파견 인력을 보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지역 고용 효과가 얼마나 실질적인지를 둘러싼 이견이 계속 생긴다.

여기에 계절 편차와 관광 의존도라는 변수도 겹친다. 제주 경제는 관광업 비중이 높고, 건설·설비 분야 역시 성수기와 비수기 편차가 뚜렷하다. 지역 설비업체 입장에서는 안정적인 물량 확보가 사업 존속의 관건인데, 보급사업 같은 공공 발주 물량이 지역 업체에 돌아가지 않으면 비수기를 버틸 여력이 그만큼 줄어든다. 이런 구조적 배경을 이해하지 못하면 단순한 ‘밥그릇 싸움’으로만 비칠 수 있지만, 실제로는 섬 지역 산업 생태계의 지속 가능성과 맞닿은 문제다.

설비를 설치하는 작업자의 모습

남은 과제와 지켜볼 지점

앞으로 관건은 제주도가 내놓을 개선안이 실제로 지역 업체 참여를 늘리는 실효성 있는 장치가 될지 여부다. 참여 자격 기준을 완화하더라도 시공 품질 관리 기준까지 낮아지면 소비자 신뢰 문제로 이어질 수 있어, 두 가지를 동시에 충족하는 제도 설계가 쉽지 않다는 시각도 있다. 국비가 매칭된 사업일 경우 중앙정부 지침과의 정합성도 함께 고려해야 하는 만큼, 지자체 재량만으로 완전히 바뀌기 어려운 부분도 있다.

또 하나 지켜볼 지점은 이 논란이 히트펌프 사업에 국한되지 않고 제주도의 다른 신재생에너지·탄소중립 관련 사업 전반의 발주 방식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이다. 이미 태양광 보급 과정에서 비슷한 문제가 제기됐던 만큼, 앞으로 나올 개선안이 하나의 선례가 되어 다른 사업에도 적용될지 여부가 관심사다. 다만 세부 일정과 기준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고, 관련 논의는 제주도의회와 제주특별자치도 관련 부서를 통해 계속 다뤄질 것으로 보인다.

소규모 설비업체 관계자들의 협의 장면

지역기업이 새겨볼 ESG 커뮤니케이션

이번 논란은 단순히 공공사업 발주 방식의 문제로만 끝나지 않는다. 지역에 기반을 둔 기업이라면 자신의 사업이 실제로 지역 경제와 얼마나 맞물려 있는지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는 숙제를 남긴다. 친환경 설비 보급처럼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사업일수록, 그 이면에서 지역 인력과 지역 협력업체가 얼마나 참여하고 있는지가 소비자와 지역 사회의 평가 기준이 되고 있다는 점을 이번 사례가 보여준다.

지역에서 사업을 운영하는 브랜드나 기업 입장에서는 환경적 가치를 내세우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그 사업이 지역 고용과 지역 협력사에 어떤 실질적 이익을 남기는지를 구체적인 사실로 설명할 수 있어야 신뢰를 얻는다. 이번 히트펌프 논란처럼 ‘친환경’이라는 명분과 ‘지역 상생’이라는 현실 사이에 간극이 있다는 지적이 나올 때, 그 간극을 먼저 인지하고 투명하게 소통하는 기업이 결국 지역 사회에서 더 오래 신뢰받는 브랜드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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