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무역 상담회장에서 부스를 살펴보는 바이어들
Jeju 2026.09.10

제주 로컬기업 홍콩 진출, 바이어는 무엇에 반응했나

부스 앞에 놓인 감귤 초콜릿 상자를 집어 든 홍콩 바이어가 포장 뒷면을 한참 들여다봤다. 성분표를 확인하는 게 아니라 QR코드를 스캔해 원산지 인증 정보를 확인하는 중이었다. 옆 부스에서는 제주 흑돼지 육포를 시식한 또 다른 바이어가 명함을 건네며 최소 발주량(MOQ)을 물었다. 2026년 상반기 홍콩에서 열린 식품 무역 상담회장 한 켠에서 벌어진 장면이다. 제주 기업 여러 곳이 이 자리에 부스를 냈고, 그 중 몇 곳은 현장에서 구두 계약 수준의 협의까지 진행했다.

이 상담회 자체는 새로운 행사가 아니다. 홍콩무역발전국(HKTDC)이 매년 여는 식품·음료 박람회는 아시아 식품 유통업계에서 오래전부터 자리를 잡은 행사이고, 제주도와 제주테크노파크 등이 지역 기업의 참가를 지원하는 사업도 몇 해째 이어지고 있다. 다만 올해 눈에 띈 건 참가 기업의 구성이 조금 달라졌다는 점이다. 예전에는 감귤 가공품이나 흑돼지 육류 중심이었다면, 이번엔 화장품·생활용품·차(茶) 브랜드까지 섞여 있었다. 제주 기업들의 수출 시도가 특정 품목에 머물지 않고 넓어지고 있다는 신호로 읽힌다.

왜 홍콩이었나, 그리고 왜 지금인가

홍콩은 자체 생산 기반이 거의 없는 도시국가에 가깝다. 식품의 상당 부분을 수입에 의존하는 구조라서 신규 브랜드가 진입하기에 심리적 장벽이 낮은 편이고, 동시에 중국 본토·동남아 유통망으로 이어지는 관문 역할도 한다. 제주 기업 입장에서는 홍콩에서 반응이 확인되면 그 다음 단계로 넘어갈 명분이 생기는 셈이다. 여기에 최근 몇 년간 원화 약세와 항공 노선 회복이 겹치면서, 소량이라도 해외 유통에 발을 걸쳐보려는 시도가 늘어난 흐름도 있다.

제주라는 산지가 가진 특유의 스토리도 무시할 수 없는 요소다. 화산섬, 청정 지하수, 감귤과 흑돼지라는 상징적 품목은 이미 국내 소비자에게는 익숙하지만 해외 바이어에게는 여전히 낯설고 그만큼 설명할 여지가 있는 소재다. 다만 이 설명이 통하려면 포장지에 한글로 ‘제주’라고 적어두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현장에서 만난 바이어들이 실제로 궁금해한 건 원료의 산지 증빙, 유통기한 관리 방식, 그리고 재구매가 가능한 물량 공급력이었다.

홍콩 컨벤션센터 외경

현장에서 체감된 변화, 계약보다 앞선 것들

이번 상담회에 참가한 제주 기업들이 공통적으로 겪은 변화는 계약 체결 자체가 아니라 그 이전 단계에 있었다. 부스 담당자들의 말을 빌리지 않고 상담회 프로그램과 사후 자료를 놓고 보면, 바이어들의 질문 수준이 예전보다 구체적이었다는 점이 눈에 띈다. 가격과 최소 발주량은 기본이고, 통관 절차에서 걸릴 수 있는 검역 서류, 알레르기 표시 규정, 심지어 홍콩 내 콜드체인 유통업체와의 연계 가능성까지 묻는 사례가 있었다. 이는 바이어들이 단순 시식 후 감상이 아니라 실제 유통 검토 단계로 들어갔다는 뜻이다.

이런 질문에 즉답을 못 하는 기업은 명함만 주고받은 채 후속 미팅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경우가 있었고, 반대로 영문 제품 규격서와 인증서를 미리 준비해온 기업은 현장에서 두세 번째 미팅까지 잡는 흐름을 만들었다. 결국 해외 바이어를 상대할 때는 제품력보다 서류와 커뮤니케이션 준비도가 먼저 시험대에 오른다는 걸 보여준 자리였다.

진열대에 놓인 한국 포장 식품

섬이라는 조건이 만드는 특수한 계산

제주 기업이 해외 유통을 검토할 때는 육지 기업과는 다른 변수 하나가 항상 끼어든다. 제주에서 생산한 물건이 일단 육지 항만이나 공항을 거쳐야 해외로 나갈 수 있다는 점이다. 물류 단계가 하나 더 늘어난다는 건 곧 원가와 리드타임에 그대로 반영된다. 감귤이나 신선 농산물처럼 계절성이 강한 품목은 이 문제가 더 두드러진다. 수확기가 짧고 저장성이 낮은 품목을 해외 유통 일정에 맞추려면, 국내 물류만 생각했을 때보다 훨씬 촘촘한 계획이 필요하다.

관광 의존도가 높은 제주 경제 구조도 배경으로 깔려 있다. 내수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판매만으로는 성수기·비수기 편차를 메우기 어렵다는 걸 여러 로컬 브랜드가 이미 체감했고, 그 대안으로 온라인몰이나 육지 유통 확장을 시도했던 곳들이 이번엔 해외로 시선을 넓힌 흐름과 맞닿아 있다. 관광객이 제주에서 사 간 물건을 다시 찾는 게 아니라, 아예 제주에 오지 않은 사람에게도 제품이 닿게 만드는 시도인 셈이다.

제주 감귤 농장 풍경

다른 지역, 다른 시대의 비슷한 도전

지역 특산품이 해외 시장에서 브랜드로 자리 잡으려 했던 시도는 제주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전남 지역 김 가공업체들이 오래전부터 일본·미국 시장을 두드리며 김을 스낵 형태로 재가공해 판매한 사례, 경북 지역 사과 농가들이 대만 시장에 프리미엄 등급으로 소량 수출을 이어온 사례가 흔히 언급되는 참고 사례다. 이들 사례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패턴은 초기 몇 년은 적자거나 손익이 거의 없는 수준에서 유통망과 인증 체계를 갖추는 데 시간을 쓴다는 점이다. 첫 상담회에서 계약을 따내는 것보다, 그 이후 두세 번의 재상담과 샘플 교환을 버텨내는 기업이 결국 지속적인 거래로 이어졌다.

제주 기업들도 이 패턴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다만 제주는 화산섬이라는 지리적 스토리, 청정 이미지라는 브랜드 자산을 이미 갖고 시작한다는 점에서 초기 관심을 끄는 속도는 다른 지역보다 빠를 수 있다. 문제는 그 관심을 실제 재구매로 이어지는 유통 계약까지 끌고 가는 지속력이다.

수출 상담 중 악수하는 바이어와 기업 관계자

아직 정해지지 않은 것들

이번 상담회에서 오간 논의 중 상당수는 아직 구두 협의 단계에 머물러 있다. 실제 수출 물량과 단가, 첫 선적 시점 등은 개별 기업과 바이어 간 후속 협상에서 확정될 사안이라 현재로서는 구체적인 숫자를 단정하기 어렵다. 제주도나 관련 지원기관이 하반기에 추가 상담회나 후속 지원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나오지만, 예산 규모나 일정은 아직 공식 발표 전이다. 따라서 이번 사례를 두고 “제주 기업이 홍콩에 진출했다”고 단정하기보다는, “진출을 위한 구체적 대화가 시작됐다”는 표현이 지금 시점에는 더 정확하다.

지켜볼 지점은 두 가지다. 하나는 이번에 오간 논의 중 실제로 몇 건이 정식 수출 계약으로 이어지는지, 다른 하나는 물류·통관 비용을 감당하면서도 가격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는지다. 소량 다품종으로 시작한 거래가 물량을 키우는 단계에서 오히려 좌초하는 경우가 다른 지역 사례에서도 있었던 만큼, 이 부분이 제주 기업들에게도 다음 관문이 될 가능성이 크다.

항구에 쌓인 수출용 컨테이너

바이어가 반응한 것과 반응하지 않은 것

현장을 정리하면 바이어들이 반응한 지점은 명확했다. 산지 스토리는 관심을 끄는 도구였지만, 계약으로 이어지는 결정 요인은 결국 인증 서류의 완비도와 물량 공급 안정성이었다. 반면 반응하지 않은 지점도 있었다. 포장 디자인이 국내 소비자 정서에 맞춰져 있어 현지 유통 진열대 규격이나 언어 표기 기준과 맞지 않는 제품들은 바이어의 관심을 오래 붙잡지 못했다. 이는 제품 자체의 품질 문제가 아니라, 해외 유통이라는 다른 채널에 대한 준비 부족에서 오는 문제였다.

홍콩 소매점 매대 모습

마무리

이번 상담회가 보여준 건 제주 로컬기업이 해외 바이어 앞에서 통하는 지점과 막히는 지점이 꽤 뚜렷이 구분된다는 사실이다. 산지 스토리는 문을 열어주지만 문턱을 넘게 하는 건 서류와 물류, 그리고 재상담을 버텨내는 지속력이었다. 지역 브랜드나 이들과 협업하는 광고주 입장에서 본다면, 이 사례는 해외 진출 마케팅의 우선순위를 다시 세울 기회다. 시식 반응이나 SNS 화제성보다 먼저, 영문 제품 규격서와 인증 체계, 현지 유통 규격에 맞춘 패키징 커뮤니케이션을 준비하는 일이 실제 계약 전환율을 가르는 지점이라는 걸 이번 홍콩 현장이 구체적으로 보여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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