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항 출국장에서 탑승을 기다리는 여행객들
Jeju 2026.09.09

제주항공 부산~구이린 취항, 중국 인바운드 새 창구

부산 김해공항 출국장 전광판에 낯선 도시 이름 하나가 새로 걸렸다. 구이린(桂林). 중국 광시좡족자치구에 있는, 산수화 속 풍경으로 유명한 도시다. 제주항공이 이 노선에 신규 취항하면서, 부산에서 중국 남부 내륙 도시로 직접 날아갈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제주라는 이름을 단 항공사가 정작 제주가 아닌 부산발 노선을 확장하는 모습이지만, 이 흐름은 결국 제주 관광 시장과도 무관하지 않은 이야기다.

부산~구이린 노선의 정확한 운항 횟수나 초기 요금 체계는 제주항공 측이 공식 발표를 통해 순차적으로 밝히는 중이며, 세부 스케줄은 계절에 따라 조정될 수 있다. 다만 분명한 것은 하나다. 부산에서 출발해 중국 본토 내륙으로 향하는 항공 노선망이 한 칸 더 촘촘해졌다는 사실이다.

비행기 창밖으로 보이는 하늘과 구름

몇 해 전만 해도 이 항로는 텅 비어 있었다

부산과 중국을 잇는 하늘길은 코로나19 이후 한동안 회복이 더뎠다. 2020년대 초반 국제선 운항이 사실상 멈춘 뒤, 부산발 중국 노선은 베이징이나 상하이, 칭다오 같은 대도시 위주로 조금씩 재개되는 수준이었다. 구이린처럼 관광지형 2선 도시까지 직항이 뻗어나가는 일은 흔치 않았다. 항공사 입장에서는 수요가 검증되지 않은 노선에 기재를 투입하는 부담이 컸고, 중국 정부의 방한 단체관광 정책과 비자 발급 조건도 시기마다 달라졌기 때문이다.

그 사이 제주는 중국인 단체관광객 의존도가 높은 지역으로 알려져 있었지만, 실제로는 개별여행객(FIT) 비중이 꾸준히 늘어나는 쪽으로 시장 구조 자체가 바뀌어왔다. 크루즈로 들어오던 단체 관광객이 줄어든 자리를, 자유여행으로 제주 곳곳을 다니는 소규모 여행객이 조금씩 채워온 셈이다. 이런 변화 속에서 부산이라는 관문이 새로운 역할을 맡게 된 것이 이번 노선 취항의 맥락이다.

부산이 관문이 되면 제주는 무엇을 얻는가

구이린은 인구 500만 안팎의 중견 도시이면서도, 중국 내에서 여행 수요가 특히 높은 지역으로 꼽힌다. 이곳 주민들이 한국 여행을 계획할 때 부산을 1차 관문으로 삼는다면, 자연스럽게 부산-경남권 관광에 며칠을 쓰고 이어서 제주로 넘어오는 동선이 만들어질 가능성이 생긴다. 실제로 최근 몇 년간 한국관광공사가 밝힌 방한 중국인 관광객 통계를 보면, 서울·경기 중심에서 부산·제주를 아우르는 다도시 여행 패턴이 늘어나는 흐름이 확인된다(한국관광공사, https://kto.visitkorea.or.kr).

물론 부산~구이린 노선이 뜬다고 해서 제주 방문객이 자동으로 늘어나는 건 아니다. 항공편이 늘어난다는 것과 그 승객이 제주까지 발을 뻗는다는 것은 다른 문제다. 하지만 항공 노선은 여행 계획의 시작점이 된다. 구이린 현지 여행사가 ‘부산+제주’ 패키지를 새로 짜기 시작한다면, 그 파급 효과는 제주 공항 국제선 카운터에서 눈에 보이는 숫자로 나타날 것이다.

부산항이 내려다보이는 도시 전경

공항 밖 상권이 먼저 알아챈다

제주 원도심이나 노형, 연동 상권의 상인들은 중국인 단체관광객 버스가 줄어든 이후의 풍경을 몸으로 겪었다. 면세점 앞 줄이 짧아지고, 특정 품목 위주로 몰리던 매출 패턴도 흐트러졌다. 그 자리를 대신 채운 건 SNS를 보고 골목을 찾아오는 개별 여행객들이었는데, 이들은 단체 관광객과 소비 패턴이 확연히 다르다. 정해진 코스의 대형 매장보다 작은 카페, 로컬 편집숍, 사진이 잘 나오는 골목을 찾아다닌다.

부산~구이린 같은 노선이 늘어나면서 유입될 개별여행객 역시 이런 패턴을 따를 공산이 크다. 이는 결국 대형 유통보다 규모가 작은 지역 브랜드에게 오히려 기회가 열릴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다만 이들이 정보를 얻는 채널이 국내 여행객과 다르다는 점은 변수다. 중국 개별여행객은 여전히 샤오홍슈(小红书)나 도우인(抖音) 같은 자국 플랫폼을 통해 여행지를 검색하는 경향이 뚜렷하고, 국내 포털이나 인스타그램 중심으로 짜인 마케팅으로는 이들에게 닿기 어렵다.

섬이라는 조건이 만드는 계산법

제주는 관광 의존도가 유독 높은 지역이면서, 동시에 육지와 뱃길·하늘길로만 연결된다는 물리적 제약을 안고 있다. 부산이나 서울에서 중국 노선이 늘어나는 것이 제주에 직접적인 호재가 될지, 아니면 오히려 여행객을 부산·경남권에 붙잡아두는 결과로 이어질지는 실제로 지켜봐야 아는 일이다. 과거 사례를 보면 두 갈래가 다 있었다. 인천공항 환승 수요가 늘어날 때 제주가 반사이익을 본 시기도 있었고, 반대로 경쟁 관광지가 접근성을 높이면서 제주 몫이 줄어든 시기도 있었다.

계절 편차 역시 무시할 수 없는 변수다. 중국 남부 지역 여행 성수기는 춘절과 국경절 연휴에 집중되는데, 이 시기는 제주 항공 좌석 자체가 국내 성수기와 겹쳐 부족해지는 시점이기도 하다. 새 노선이 열려도 정작 제주로 이어지는 국내선·국제선 연결편이 빠듯하면 실질적인 유입 효과는 제한적일 수 있다.

쇼핑을 즐기는 관광객 무리

구이린이라는 도시가 가진 의미

구이린을 아는 사람이라면 이곳이 중국인들에게 ‘이상적인 풍경’의 상징 같은 도시라는 걸 안다. 리장강을 따라 솟은 카르스트 봉우리들은 중국 초등학교 교과서에도 실릴 만큼 익숙한 이미지다. 이런 도시 출신 여행객들이 제주를 찾는다면, 이들의 기대치는 단순한 쇼핑이 아니라 자연 경관과 로컬 라이프스타일 쪽에 맞춰져 있을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최근 방한하는 중국 개별여행객들 사이에서 올레길, 오름, 해안 산책로처럼 도시화되지 않은 풍경을 찾는 수요가 늘고 있다는 점은 제주관광공사 자료에서도 확인된다(제주관광공사, https://ijto.or.kr).

이는 제주가 그동안 관성적으로 짜온 중국인 대상 관광 코스와는 결이 다른 요구다. 면세점과 대형 테마파크 중심의 동선이 아니라, 걷고 머무는 여행에 맞춘 콘텐츠가 필요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구이린의 카르스트 산악 풍경

아직 정해지지 않은 것들

부산~구이린 노선의 안착 여부는 몇 가지 조건에 달려 있다. 우선 운항 스케줄이 안정적으로 유지될지, 초기 탑승률이 기대만큼 나올지는 몇 달간 실적을 지켜봐야 판단할 수 있다. 중국 현지 여행사들이 부산-제주를 묶는 패키지 상품을 실제로 얼마나 만들어낼지도 미지수다. 항공사가 노선을 열었다고 해서 여행 상품 시장이 곧바로 따라오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또 하나 지켜볼 지점은 제주도와 부산시, 그리고 관련 지자체들이 이 노선을 계기로 공동 마케팅에 나설지 여부다. 두 도시가 손잡고 ‘부산+제주’ 다도시 여행 상품을 함께 홍보한 전례가 없지는 않지만, 코로나19 이후 재개된 사례는 아직 많지 않다. 이런 협력이 구체화되는지에 따라 노선 취항의 파급력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제주 해안 올레길 산책로

지역 브랜드가 지금 눈여겨볼 것

제주 안에서 로컬 브랜드를 운영하는 이들에게 이번 소식은 당장의 매출로 연결되는 이벤트는 아니다. 하지만 노선 하나가 새로 열릴 때마다 여행객의 국적별 구성과 소비 패턴이 조금씩 바뀌어온 것은 그간의 흐름이 보여준 사실이다. 개별여행객 중심으로 재편되는 중국인 방문객이 어떤 채널로 정보를 얻고, 어떤 동선을 그리는지를 미리 살펴두는 편이 유리하다. 특히 샤오홍슈 같은 플랫폼에서 제주가 어떻게 소개되고 있는지, 자사 브랜드가 그 안에서 발견될 여지가 있는지를 점검해볼 시점이다. 노선이 늘어나는 지금이야말로, 다음 방문객이 도착하기 전에 준비를 끝내둘 타이밍이다.

골목 상점가의 소규모 가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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